안녕하세요
(사)마중물 사무처입니다.
24년도의 마지막 목요광장 책읽기가 열렸습니다.
코로나19로 모든 광장이 열리지 못하다가
서서히 코로나가 풀리면서 23년도 하반기부터
다시 재개된 마중물 목요광장이었는데요.
24년도에는 <공간으로 세상읽기>와 <철학자의 세상읽기>편이
추가 구성되어 좀더 풍성해진 목요광장을 열렸습니다.
마지막을 장식한 책읽기의 책은 <선배시민> 개정판입니다.
22년도에 책이 나오면서,
2년 사이에 선배시민학회, 선배시민협회까지 창립되며
활발히 활동중인데요.
선배시민운동의 이론서인 <선배시민 개정판> 책을 매개로
올해 마중물 목요광장을 마무리해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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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별히, 참여하신 한순애 선생님의 간단한 스케치 글을 올립니다.
*수능이 있었던 날, 서창동 공간마중 3층에선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과 수능을 막 치르고 온 청년 후배시민까지 함께
<선배시민> 개정판을 매개로 마지막 목요광장이 열렸다.
*공간마중 외부에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던 감나무의 대봉감을 딴 날,
제주에서 올라온 유기농 귤과 함께 테이블마다 선배시민 책이 놓여있고,
유해숙 교수님은 마침 연주황 니트로 코디를 맞추셔서 온통 주황빛으로 물든 날이었다.
*자기 삶에 대한 고백
– 40대까지는 주부로서 또는 엄마로서 한눈팔지 않고 모범적인 모습으로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,
어느날 아이들이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‘숨막혔다’는 얘기를 듣고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.
이 책 속에서 ‘나때는 말이야’가 아닌 ‘너때는 어때?’ 부분이 그래서 더욱 좋았고,
세대를 가르지 않고 소통하는 대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.
- 주말마다 아빠를 따라 노인들과 함께하는 마라톤 동호회를 참석한다.
현재 난임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모르는 노인들이 무시로 아무렇지도 않게 ‘애를 낳아야지~’ 하며
개인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보게 된다.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
이런 꼰대스러운 무례함은 노년의 일반적인 특성일까, 아니면 개개인의 서로 다른 특성일까?
*책에 대한 질문
- 마중물에서 우정의 공동체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기술되었는데, 동일 인물이 맞나요? ㅎㅎ
-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행복할까? 부분에서 우정의 위기, 실존적 위기, 동일성의 위기를 말씀하셨는데,
위기라고 판단한 것에 대한 좀 더 풍부한 사례나 근거가 빈약한 너무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요?
많은 사람들이 활동적 노년을 욕망하고 우리 사회에서 실제 보여지는 모습들도
그들끼리 쿵짝쿵짝 행복한 모습들이 넘쳐나는데 그것들을 위기로 단정하기에는
사례가 너무 빈약한 것 아닌가 하는 괜스레 딴지 ㅎㅎ
*책을 매개로 한 자유토론
- 우리나라의 ‘정’ 문화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.
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우정의 문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.
- 선배시민이 학교나 마을 곳곳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성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
성공적인 복지관 사례들을 볼 때 선배시민 운동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사회의 변화된 모습들을 본다.
- 자원활동을 하는 선배시민들의 활동적인 모습이 본인의 자긍심이나 만족감을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모델인데,
철학이 빠진 채로 활동한다면 자칫 시혜적 시선을 내뿜는 또다른 미담의 주인공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새겨야 한다.
(배식 자원활동하는 선배시민 왈, 배식받는 당사자들이 감사함을 모르고 받더라~ )
철학으로 무장한 선배시민의 프락시스가 중요하다.